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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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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

Arche = 불. 모든 것은 불로써 존재한다.
아마도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 넘어가는 시기에 활동했을 것이다.
플라톤의 평가: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을 ‘만물은 흐른다’로 요약
아리스토텔레스의 평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을 근원적 원질로 제시했다며, 밀레투스학파의 계승자로 평가
둘의 평가가 모순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불변적 단일 근원상정하는 입장을 비판했다고 보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라클레이토스가 그것을 ‘불’로 제시한다고 해석한다는 점에서
‘수수께끼 철학자’
생성을 설명하기 위해 궁극적이고 단순한 원질이나 원리를 찾으려는 입장 비판
왜 생성을 설명하기 위해 알 수 없는 무언가 구조든 물질이든 상정하고 시작을 하는가?
이오니아학파 비판
생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불변하는 최초의 원질(archē)을 찾으려는 시도 비판
피타고라스학파 비판
“박학이 분별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 이걸로 생성을 알 수 없다.
생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생성 밖에 존재하는 원리를 찾으려는 시도 비판
그 원리가 조화와 비율로 이루어진다는 주장 비판
헤라클레이토스 철학
Logos_질서 모든 것을 전쟁 싸움 갈등이다. 이 구조로 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진다. 생성은 혼란_Chaos이다. 이 속에서 우리가 logos_질서를 찾아야한다. 술을 봐도 알코홀 원액과 물을 적절히 섞어야하는데 그 적절함을 찾아가는 과정이 대립이고 싸움이다. 하나의 의견을 찾아가는 과정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대립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지듯이.
“이 로고스(logos)는 언제나 그러한 것으로 있지만, 사람들은 듣기 전에도, 일단 듣고 나서도 언제나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 로고스에 따라서 생기건만, 내가 각각의 것을 본성에 따라 구분하고 그것이 어떠한지를 보이면서 상술하는그러한 말들과 일들을 그들이 경험하면서도, 그들은 경험 없는 사람들 같기 때문이다.”
로고스: 만물은 하나의 원리에 따라서 생성 소멸한다. 우리는 생성 소멸의 과정으로부터 그 원리를 추론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것을 로고스라고 부른다.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고 모든 것의 왕이다. 그것이 어떤 이들을 신으로 또 어떤 이들을 간으로 만들며, 어떤 이들을 노예로 또 어떤 이들을 자유인으로 만든다.”
구체적으로 로고스는 대립적 관계로 만물이 생성 소멸한다.
“원의 둘레에서 시작과 끝은 공통이다.”
생성은 계속되는 흐름 속에 있다.
이 주장을 보고 플라톤은 “arche의 주장과는 다르다. 이는 모든 변화의 시작점을 찾는 이들이지만 해당 주장은 시작은 없다. 만물은 흐르고 순환할 뿐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 세계는, 모두에게 동일한데, 어떤 신이나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어왔고 있고 있을 것이며, 영원히 살아 있는 불로서 적절한 만큼 타고 적절한 만큼 꺼진다.”
‘불’: 생성으로서의 세계를 묘사하기 위한 메타포
계속되는 대립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메타포로서 불을 사용했다. 그냥 이 세상은 이 세상 자체인데 왜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뭔가 있는 것처럼 밖에 있는 구조나 물질같은 것을 찾으려고 하냐~ → 생성 존재론 / 생성 일원론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특징
생성존재론: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가 기본적으로 생성임을 주장한다. 생성만이 존재한다.
세계는 (대립)의 원리에 의해서 돌아간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서 사물들이 파괴된다, 부정된다가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것에 의해서 질서가 구성된다고 주장

신화적 종교적 사유로부터 철학적 사유의 전환은 단절인가 연속인가?

“뮈토스(Mythos)에서 로고스(Logos)로”
“뮈토스와 로고스라는 두 말로 우리는 인간의 정신적 삶의 영역을 움직이는 두 축으로 삼는다. 신화적 표상과 논리적 사고는 상반된 것이다. 전자는 상상적이고, 비자발적이며, 무의식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고 또 형성된다. 반면에 후자는 개념적이고의도적인데, 의식에 의하여 분석, 종합된다.”(빌헬름 네슬레)
철학과 신화의 연속성 (콘퍼드)
카오스로부터 코스모스(질서) 개념의 출현을 설명하고자 함
지배 원리로서의 도덕적 규범성
신화와 철학은 단절되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어져있다. 신과 arche..?

휴머니즘의 시작

기원전 5세기경의 아테네의 사상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
퓌지스(physis) 규명에 반발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생활상
민주주의 제도: 정치술을 중시

소피스트(sophistes)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hia)에서 유래한 말로, 소피스트란 ‘지혜를 가진 사람’을 뜻함
이들은 그리스 사회에서 처음으로 돈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침
형이상학적 지식이 아니라 ‘잘사는 것’에 대한 지혜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등장
이들에게‘잘사는 것’이란?
변론술(rhetorike) 또는 웅변술을 가르침
당시 아테네는 직접 민주주의 사회였다. 정치적 성공은 공공의 장소에서 시민들 을 얼마나 잘 설득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소피스트는 무엇이 선인지 혹은 무엇이 궁극적으로 옳은 진리인지가 아니라 상 대가 어떤 말을 할지라도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다녔다.
소피스트 철학의 특징
소피스트의 주관적 상대적 진리
진리의 객관성을 부정, 모든 것은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라고 주장
소피스트의 윤리적 가치: 쾌락주의적 특성
소피스트 철학의 의의
당연하게 받아드려지던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진짜 좋고 확실한 것은 내가 지금 좋은 것이다.
소피스트가 남긴 문제
이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철학을 하게 만듦
상대주의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만 사회에 있다 → 공통된 하나의 참된 가치, 문제의식 없이 각자의 방식대로 살 수 있다. → 와해될 수도 있다 (하필 전쟁도 발생함)

소크라테스

모두가 다양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느끼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 기준은 무엇이지? - 얼굴, 성격, 자연 등 다양한 것들로 부터 똑같이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 아름다움 그 자체는 뭐지?
문제의식: 아테네 사회에 팽배한 상대주의와 쾌락주의의 경향을 극복하기
궁극적 앎과 객관적 도덕적 가치를 규명할 수 있다고 믿음
상대주의에 반대하여
무지의 깨달음에서 출발
Episteme_참된 인식 을 추구
Episteme를 찾는 과정. 결론까지 가지는 않음 그렇다면 왜 무엇이다라고 정의내리지는 않았을까? 이를 정의내리면 이에 반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고, 이와 반대되는 내용을 가리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즉 플라톤이 만든 Philo(사랑하다) Sophy(지혜)의 철학에 부합하는 것일 수도 있음. 또한 정의를 내리는 순간 사람들을 찾기위한 생각을 하지 않고 정의된 것을 이해하고 적용하려고만 한다.
Episteme: 지식, 인식인데, 변화하는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이 아니라 근 원적이고 불변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인식
“용기란 무엇인가?” 용기 있는 행동들,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것 들을 용기 없는 것들과 구분하게 해주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규명하기
아직 얻지 못한 지식의 이상
기하학적 방법론을 인간 탐구에 적용
철학이란 지혜가 주어져 있어서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것을 찾아 나서는 활동이다
쾌락주의에 반대하여
신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순간적으로는 좋은 감정을 주겠지만 나의 삶 전체에 좋은 것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신체 / 영혼을 구분 짓기 시작했음
육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정화하고 참된 도덕적 덕목을 실천 하는 삶을 설파
욕망의 원리는 결핍이다. 결핍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것.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노력은 무용.
대신해서 영원히 반복되는 결핍의 사이클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 진정으로 좋은 것
소크라테스는 프시케(psyche: 영혼)의 개념을 처음 철학에 도입
『알키비아데스』:“영혼이 인간입니다”
육체와 영혼을 구분해서, 영혼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함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왜 철학이 죽음의 연속일까? 정신적이고 영혼의 고향을 추구..? WTF 영혼이 더 본질적인 것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의의와 한계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학문이 중심이 인간으로 좁힘 철학을 규명한다는건 왜?라는 것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전에는 다들 HOW?의 측면으로 접근했다. 뭐지.,.,.,.,